京鄕新聞

  • 연대: 1899
  • 저자: 안세화
  • 출처: 京鄕新聞
  • 출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자료
  • 최종수정: 2017-01-01

抱川 포쳔 군슈 韓晩容 한만용씨

長淵 쟝단 군슈 趙重恩 죠즁은씨

振威 진위 군슈 金英鎭 김영진씨

陽川 양쳔 군슈 徐丙業 셔병업씨

젼라도

金堤 김뎨 군슈 殷松悅 은숑열씨

강원도

洪川 홍쳔 군슈 南龍熙 남룡희씨

江陵 강릉 군슈 池逸燦 지일찬씨

通川 통쳔 군슈 金孝益 김효익씨

蔚珍 울진 군슈 李殷宓 리은복씨

함경도

穩城 온셩 군슈 金斗天 김두텬씨

국ᄂᆡ 잡보

셔울보

○일진회가 셰 난다

경무ᄉᆞ 구연슈씨가 총슌 일인 권임 일인 슌검 팔인을 일진회 인으로 더 내엿더라

○일진회 셰샹

ᄂᆡ부에셔 셔긔관 삼인 셔긔랑 칠인을 더 내ᄂᆞᆫᄃᆡ

다 일진회인이 ᄒᆞ엿더라

○뎌희들만 쓰라네

일진회의셔 회인 삼십인을 셩명셩ᄎᆡᆨᄒᆞ여 ᄂᆡ부에 보내고

관리 즁에 슈용ᄒᆞ라 ᄒᆞ엿다더라

○일본 외무 대신 귀국

일본 외무 대신 림동씨가 거월 이십팔일 오젼 여ᄃᆞᆲ 시에 경부텰도 첫챠ᄅᆞᆯ ᄐᆞ고

본국으로 향ᄒᆞ엿ᄂᆞᆫᄃᆡ

총리 대신 이하 각 부 대신과 ᄂᆡ외국 고등관이 남문 밧 뎡거쟝에 나가 젼별ᄒᆞ엿더라

○쟝례원 주본

장례원에셔 주본ᄒᆞ기ᄅᆞᆯ

황뎨폐하 즉위 쳐소와 날ᄌᆞᄅᆞᆯ 엇지ᄒᆞ올지

쳐소ᄂᆞᆫ 즉조당(卽祚堂)으로 ᄒᆞ고

날ᄌᆞᄂᆞᆫ 음력 칠월 망간으로 ᄒᆞ라 ᄒᆞᄋᆞᆸ셧더라

경긔보

●안셩군 폭동

안셩군 사ᄅᆞᆷ들 수쳔명이 니러나

일진회 ᄉᆞ무소ᄅᆞᆯ 쳐부스고

모든 문셔와 셰간 즙물을 몰수히 불ᄉᆞᆯ오고

ᄯᅩ 회원 김슌여의 집과 즙물을 다부스고

온 디경 안히 대단히 소요ᄒᆞ다더라

●리쳔군 소동

리쳔군에셔 거월 이십륙일에 인민 수ᄇᆡᆨ명이 모혀

대단히 위험ᄒᆞ고

ᄯᅩ 결ᄉᆞᄃᆡᄅᆞᆯ 모화

그 디방에 잇ᄂᆞᆫ 일인을 쳐죽이려 ᄒᆞ니

이십칠일에 일본 긔병 얼마ᄅᆞᆯ 보내엿다더라

●송씨의 싀골

집을 부순다ᄂᆞᆫ 말 각쳐에 인민이 니러나ᄂᆞᆫᄃᆡ

이십팔일에 양지 쥭산 등디에셔 인민 수쳔명이 모혀 셩언ᄒᆞ기ᄅᆞᆯ

양지 츄계촌 송병쥰의 집을 부스고

각쳐 뎡거쟝을 불ᄉᆞᆯ아

일본 병ᄃᆡ의 ᄅᆡ왕을 막고 련ᄒᆞ야

셔울노 올나온다ᄂᆞᆫ 말이 랑쟈ᄒᆞ다더라

경샹보

▲진쥬군 소동

이십 오일에 진쥬에셔 대한 병뎡 칠팔십 명이 분파소ᄅᆞᆯ 쳐형 셰심히 불온ᄒᆞ매

산하 경부 이하 슌ᄉᆞ 슌검 십이명을 급히 보내엿ᄂᆞᆫᄃᆡ

지금 분파소 치ᄂᆞᆫ 거ᄉᆞᆫ 좀 긋쳣ᄉᆞ나

ᄇᆡᆨ셩 수ᄇᆡᆨ명이 병뎡과 합ᄒᆞ야

일인의 집에 돌질ᄒᆞ여

여ᄉᆞᆺ 집을 부스고

일인 샹ᄒᆞᆫ 쟈ㅣ 다ᄉᆞᆺ시라

모양이 대단히 위험ᄒᆞ니

일인들이 ᄒᆡ샹과 산골노 피란ᄒᆞ고

마산포에셔 일병 십명과 슌시 십명을 보내여 구원ᄒᆞᆫ다더라

▲통영이 요란

통영 진위ᄃᆡ와 ᄇᆡᆨ셩 ᄇᆡᆨ여명이 일인과 싸화

일인의 집 여러흘 부스고 요란ᄒᆞ니

마산포 리ᄉᆞ텽의셔 진ᄒᆡ만 요ᄉᆡᆨ병 십오명과 슌사 십명을 파송ᄒᆞ엿다더라

삼남보

●웨 아니 그러리오

삼남 등디에ᄂᆞᆫ ᄃᆞᆯ포가 넘도록 비가 오지 아니매

민심이 소동ᄒᆞ야

ᄊᆞᆯ갑시 졈졈 고등ᄒᆞᄂᆞᆫ 고로

쳐쳐에 도적이 대치ᄒᆞ야

인명도 살해ᄒᆞ고 곡식도 ᄲᆡ아사가ᄂᆞᆫ 고로

민졍이 오오ᄒᆞ다더라

함경보

●이런 인물은 ᄃᆞᆫᄃᆞᆫ히 징치

음력 오월 십구일에 안변 문산 새미ᄋᆞᆯ 사ᄂᆞᆫ 무뢰ᄇᆡ들이 일본 병뎡 삼명을 ᄃᆞ리고 와셔

ᄇᆡᆼᄉᆞᄉᆡ골 사ᄂᆞᆫ 유오위장 집에 슈졀ᄒᆞᄂᆞᆫ 과부ᄅᆞᆯ 업어가려 ᄒᆞ매

그 동리 사ᄅᆞᆷ들이 일심으로 내ᄃᆞ라 치니

그 놈들이 ᄶᅩᆺ기ᄂᆞᆫ지라

ᄀᆞᆺ치 왓던 일병이 총을 노하

동리 사ᄅᆞᆷ의 다리가 맛거ᄂᆞᆯ

사ᄅᆞᆷ들이 일졔히 ᄃᆞ라들어 일병의 총을 ᄲᆡ아사 가지고

일병을 짓ᄶᅵ으니

일병이 ᄃᆞ라ᄂᆞᆫ지라

이 란류들이 도로혀 안변 본관에 졍ᄒᆞ니

슌검과 ᄎᆡᄉᆞᄅᆞᆯ 보내여 사실ᄒᆞᄂᆞᆫ 즁이라더라

●사ᄅᆞᆷ은 샹치 아닌가

함흥군에 쥬ᄌᆡᄒᆞᆫ 일본 슈비마ᄃᆡ영에셔 우연히 불이 나셔

ᄆᆞᆯ 여ᄃᆞᆲ ^필이 타죽고 마구 일ᄇᆡᆨ이십간이 몰수히 탓다더라

간도보

○아국인이 간도ᄅᆞᆯ 탐지

아국인이 쳥국 혼츈에 샹마적 일부ᄅᆞᆯ 모집ᄒᆞ야

보호ᄅᆞᆯ 삼고 간도ᄅᆞᆯ 탐지ᄒᆞ기로 드러왓다ᄂᆞᆫ 쇼식이 잇더라

평안보

△숑민을 착슈ᄒᆞᆷ

평양외셩 등디에 셤학양ᄉᆞ뎐(贍學養士田)을 관찰ᄉᆞ 박즁양씨가 일인의게 방매ᄒᆞ겟다ᄂᆞᆫ 소문이 잇ᄉᆞᆷ으로

ᄉᆞ민 이ᄇᆡᆨ여 명이 등소ᄎᆞ로 관찰도에 갓더니

사ᄅᆞᆷ이 너무 만타고 란민이라 ᄒᆞ야

슌검과 일슌사ᄅᆞᆯ 시겨 모다 ᄯᅡ려 내ᄶᅩᆺ고

그 즁 십오인을 경무령에 착슈ᄒᆞ고

긔어히 징역에 쳐ᄒᆞᆫ다고 위협ᄒᆞᆷ으로

무법 텬디라고 항셜이 분분ᄒᆞ다더라

△증남포 연셜

미국에 유람ᄒᆞᆫ 안창호라 ᄒᆞᄂᆞᆫ 션ᄇᆡ가 증남포 신샹회에셔 연셜ᄒᆞᄂᆞᆫᄃᆡ

문데ᄂᆞᆫ ᄌᆞ쥬 동립 문명 부강이라

남녀로유가 구름 모히ᄃᆞᆺ ᄒᆞ엿고

연셜ᄒᆞᄂᆞᆫ ᄉᆞ의가 격졀ᄒᆞᆫ 고로

톄읍 통곡ᄒᆞᄂᆞᆫ 쟈ㅣ 무수ᄒᆞ엿다더라

△평산북도 우박

칠월 이십삼일 녕변 벽동 두 고ᄋᆞᆯ에 굵은 우박이 만히 ᄂᆞ려

뎐답간에 농ᄉᆞᄒᆞᆫ 거시 몰수히 샹ᄒᆞ엿다더라

△돈의학교 하긔 시험

증남포 텬쥬당 돈의학교(敦義學校)에셔 하긔 시험을 ᄒᆞᄂᆞᆫᄃᆡ

샹민과 학도 남녀로쇼 오ᄇᆡᆨ여명이 모히고

샹픔 물은 감리셔에셔 공ᄎᆡᆨ 열 권 연필 두 갑 김샹찬씨ᄂᆞᆫ ᄇᆡᆨ로지 ᄒᆞᆫ 츅 연필 ᄒᆞᆫ 갑이오

김도징씨와 김졍민씨와 리경하씨ᄂᆞᆫ 각 ᄇᆡᆨ로지 ᄒᆞᆫ 츅식이오

방판 한광젼씨ᄂᆞᆫ 신화 이환이오

오방판은 신화 일환 ᄎᆡᆨ 두 질

김형셥씨ᄂᆞᆫ 신화 이십환이오

김홍슌씨ᄂᆞᆫ 신화 십환이오

홍대션씨ᄂᆞᆫ 면보 ᄒᆞᆫ 궤 모군 텽에서는 ᄇᆡᆨ로지 ᄒᆞᆫ 축 ᄎᆡᆨ이 십권이오

각 학도 부형들이 각기 물품을 내여

우등학도의게 샹급ᄒᆞ고

총슌 최샹진씨가 권면ᄒᆞᄂᆞᆫ 연셜을 ᄒᆞ고 파회ᄒᆞ엿다더라

젼국보

○일병을 ᄇᆡ치

이번에 일본 졍부가 대한 인민의 폭동을 진뎡ᄒᆞ기 위ᄒᆞ야

병뎡을 파견ᄒᆞ엿ᄂᆞᆫᄃᆡ

동ᄅᆡ(東萊)와 대구(大邱)와 인쳔(仁川)과 경셩(鏡城)과 ᄀᆡ셩(開城)과 평양(平壤)에 잇게 ᄒᆞᆫ다더라

외국 잡보

일본보

○일본 읏듬 대신의 뎐보

일본 슈샹셔 원ᄉᆞ 공망씨가 이등통감의게 이번 한일 신협약 셩립ᄒᆞᆫ 거시 만죡ᄒᆞ다고

치하ᄒᆞᄂᆞᆫ 뎐보ᄅᆞᆯ 보내엿더라

하란보

▲ᄒᆡ아의 한국인 쇼식

대한인 리위죵 졔씨가 자우잠푸동에셔 미국으로 향ᄒᆞᄂᆞᆫᄃᆡ

리위죵씨가 루테 통신원을 보고 말ᄒᆞᄃᆡ

우리ᄂᆞᆫ 미국 대통령을 맛나보고

유명ᄒᆞᆫ 도회쳐ᄅᆞᆯ 구경ᄒᆞ고

영국으로 도라오겟노라 ᄒᆞ며

ᄯᅩ 황명으로 온 거ᄉᆞᆯ 셜명ᄒᆞ며

이번에 양위ᄒᆞ신 거ᄉᆞᆫ 일본이 대한 역젹들을 사셔 가지고 ᄒᆞᆫ 일이라고 ᄒᆞ엿더라

광고

츙쳥도 은진 갈마면 셔촌사던 박방지거가 륙월 초칠일에 셰샹을 ᄯᅥ낫ᄉᆞ오니

경향 각쳐 교형은 련도ᄒᆞ여 주시기ᄅᆞᆯ 바라ᄋᆞᆸᄂᆞ이다

◉물픔 시가

●안셩 쟝 당오

ᄇᆡᆨ 미 샹 一말 二十三량

즁 一말 二十一량

가을보리 ᄒᆞᆫ 말 七량

봄보리 ᄒᆞᆫ 말 五량

콩 ᄒᆞᆫ 말 十五량

담ᄇᆡ ᄒᆞᆫ 바리 千二百五十량

담ᄇᆡᄃᆡ ᄇᆡᆨ개 샹 六百량

즁 五百량

하 三百량

ᄃᆞᆰ ᄒᆞᆫ 마리 샹 十량

즁 八량

모밀 하 ᄒᆞᆫ 말 十五량

소 샹 二千五百량

즁 二千량

밀 ᄒᆞᆫ 말 十량

●김젼 쟝 엽젼

ᄇᆡᆨ동화 一량 엽젼四젼 七푼 지화 一환 엽젼 五량 흑 매ᄆᆡ시에 四량 九젼

ᄇᆡᆨ미 샹 一승 二량 一젼

즁 二량

하 一량 九젼

콩 一승 一량 一젼

젹두 一승 二량

보리 샹 一승 六젼

즁 一승 五젼五푼

하 一승 五젼

북어 一ᄐᆡ 百량 혹 八十五량

ᄀᆡ억 一단 三량

면쥬실 ᄆᆡ 량 즁 一량 三젼

ᄇᆡᆨ목 즁지 샹 一필 八량

왜ᄉᆞ ᄇᆡᆨ목 一필 四량

마포 즁지 샹 一필 七량 七젼

하 五량 三젼

창호지 ᄒᆞᆫ 덩이 百六十량

ᄇᆡᆨ지 ᄒᆞᆫ 덩이 三十七량

●진남포 쟝 신화

ᄇᆡᆨ미 샹 대두 열 말 十四원

즁 十二원 五十젼

하 十一원 五十젼

현미 十一원 九十젼

콩 七원

팟 八원 七十젼

좁ᄊᆞᆯ 八원 五十젼

우피 百근 二十五원

황소 ᄒᆞᆫ 필 七十五원

ᄎᆞᆷᄭᆡ ᄒᆞᆫ 셤 十八원 五十젼

京鄕新聞 發行所

京城 南署鍾峴

新聞社長 安世華

明治 三十九年 十月 十九日